“모교에 작품을 기증하게 돼 감회가 남다릅니다. 그림으로 사람들에 빛을 주겠다고 생각했던 고흐의 작품을 통해 학생들, 후배들에 희망을 전하고자 이 작품을 기증하게 됐습니다”
지난해 중앙도서관 1층에 세계적인 미디어아티스트인 이이남 작가의 작품이 걸렸다. 이 작가는 미술대학 동문으로, 동대학원에서 순수미술 석사학위와 미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세대 영상예술학 박사과정도 수료했으며 현재 광주, 대한민국을 넘어 미국, 아시아,유럽 등 전 세계에서 활동중이다.
이 작가가 기부한 작품은 ‘별이 빛나는 밤에’를 디지털로 재해석한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Gogh, The Starry Night)’. 85인치 화면에 담긴 이 작품은 밤이라는 고정된 시간에 낮과 밤의 변화를 더해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극대화해 보여준다. 이 작가는 별이 빛나는 밤의 시간을 넘어 반 고흐의 예술적인 도전을 디지털 기법을 통해 재시도하고자 했다고 전했다.
“바쁜 삶을 살아가는 시대잖아요. 학생들이 앉아서 작품을 보여 여유를 가지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고흐의 삶은 참 불행했지만 희망을 가졌던 것처럼 후배들도 그랬으면 좋겠고요.”
명화를 접목한 미디어아트… 관람객들에게 위로가 되길
전남 담양 출신인 이 작가는 조소를 전공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세계적인 미디어아티스트가 될 수 있었을까. 그는 “우리 삶은 만남의 영향을 받는 것 같다”며 1997년 순천대 만화과에서 강의하며 애니메이션을 접했던 때를 회상했다.
“처음 대학 강단에 섰는데, 애니메이션하면 그림이 그려진 종이가 넘어가면서 제작된다는 편견을 완전히 타파하는 계기를 만났어요. 애니메이션 작업을 전부 컴퓨터로 하더라고요. 그 당시 컴퓨터는 사양이 좋지도 않았는데 신기했어요. 이 기술을 미술에 적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미디어아트를 시작한 이 작가는 좀 더 배워보고자 연세대 영상대학원에서 공부를 했고 실험적인 작품들을선보였다. 하지만 관객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이 작가는 “관람객들이 5분이라도 작품 앞에 머무르는 것이 작가에 대한 예의”라고 말한 다니엘 아라스의 말을 생각하며, 관람객들의 발길을 붙잡을 방법을 고민했다.
그러던 중 유명한 작품 또는 관람객이 아는 작품 앞에서는 오래 서서 감상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대한민국에서는 최초로 명화를 차용하게 됐다. 이 작가가 제일 먼저 선택한 명화는 의재 허백련의 산수화, 김홍도의 ‘황묘농접도’ 등과 같은 조선시대 회화들이었다.
그가 나고 자란 담양에서 만난 남도의 풍경들은 그에게 스며들어 있었고, ‘기운생동(氣韻生動)’, 마치 살아있는 듯한 기운을 중요하게 생했던 동양의 고전회화는 생명력을 추구하는 이 작가의 작품세계에 영감을 주었다.
조선시대 회화들을 원작으로 한 이 작가의 작품들은 2004년 서울 비엔날레에서 큰 주목을 받으며 화제가 됐고 이후 모네의 ‘수련’, ‘해돋이’ 등 외국 작품들도 미디어아트로 선보여 호응을 얻었다.
이후 에드워드 호퍼, 요하네스 베르메르 등 여러 작가들의 작품들을 미디어아트로 제작하며 전 세계 관람객들과 만나고 있다.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는다는 것은 단순한 움직임에 그치지 않고, 죽어있는 내면적 감정이 소생하는 경험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해요.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한 시대잖아요. 이럴 때일수록 관람객들이 제 작품들을 보며 감정을 되돌아보고 위로를 얻길 바랍니다.”
그의 작품들은 광주시 남구 양림동에 위치한 ‘이이남 스튜디오’에서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는 현재 ‘이이남 : 조우, Here We Meet’ 전시가 진행중이며 영상, 페인팅, 조각, 설치 등 20여 점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전시를 관람하며 관람객과 소통하고 시대를 공유하고자 하는 이 작가의 바람을 느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