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미디어에선 살인에 대한 것이 등장한다. 살인에는 다양한 방법들이 존재한다. 대충 떠오르는 것만 해도 독살, 교살, 압살, 총살 등 이외에도 다양한, 가끔은 창의적이기까지 한 살해법들이 있다. 하지만, 내가 그러한 살해의 방식 중 가장 흥미를 느낀 것은 독살이었다.
독살에 흥미를 느꼈던 것은 독이라는 물질 그 자체에 대한 흥미 때문이었다. 약학을 전공으로 하는 입장에서 독이라는 것은 대단히 흥미로운 것이 아닐 수 없다. 사전에서 독은 건강이나 생명에 해가 되는 성분이라 정의하고 있다만, 독성학의 아버지 파라켈수스는 “약과 독은 투여량에 의해 결정된다.”라고 말했다. 이는 독이 단순히 나쁜 물질이 아니라 그 양에 따라 모습을 달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독살에 흥미를 느꼈던 다른 이유는 그 안에서 느껴지는 살의 때문이다. 가끔 드라마나 영화에서 살인자는 “죽이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우발적인 살인이었다.”라는 말을 한다. 대부분 말다툼을 하다가 상대에게 물리적 위협을 가했을 때의 변명이다. 하지만, 독살의 경우는 그것이 먹히지 않는다. 누구도 우발적으로 음식 안에 청산가리를 넣지 않는다는 점에서 말이다. 즉, 독살이란 다른 사람을 죽이려 하는 악한 마음을 가지고서 그 사람의 일상 속에 악의와 살의, 독을 타는 행위인 것이다. (물론, 무지에 의한 죽음 역시 있다. 이 경우, 그 죽음은 지식이나 제도가 된다. 슬픈 일이지만, 세상은 때때로 죽음 위에 성립한다.)
그렇다면, 인간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죽이는 것 중 독과 유사한 속성을 보이는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 나는 이 질문에 <유튜브>라 답하고 싶다. 유튜브는 동영상 공유 및 스트리밍 플랫폼이다. 사람들은 이를 정보를 얻는 수단으로 쓰기도 하고, 교육과 관련된 영상을 보기 위하여 쓰기도 하며, 감정적인 효용을 위해 코미디 영상이나 귀여운 소동물들의 영상을 보기도 한다. 이는 ‘약’과 유사하다. 자신을 위한 긍정적 사용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하지만, 유튜브는 독으로써의 모습 역시 가지고 있다. 이는 비단 가짜뉴스 같은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특유의 중독성으로 우선순위를 망각하게 하고서, 시간을 죽이도록 하는 것 역시 그에 해당한다.
누군가는 독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만보면 되는 일이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정론이다, 하지만 이에 반박을 해보려 한다. 반박이라기엔 변명이나 신세타령에 가까운 것이지만 말이다.
이 글을 적기 전에 <유튜브와 나의 하루>라는 주제를 보고 참 많은 생각을 했었다. 단순히 유튜브에 관하여 서술하는 것이었다면, 그쪽이 편했을 것이다. 요즘 세대의 문해력 저하 문제를 유튜브와 연관시키고, 유튜브가 사람들을 망치고 있다는 유튜브 영상이 존재하는 아이러니를 소재로 삼아 한국인다운 해학과 풍자를 수놓는다면 금상첨화이지 않겠는가. 하지만, ‘나의 하루’와 결부하여 그것을 생각하면 논점은 달라진다. 문해력보다는 시간 관리와 중독에 대한 문제로 말이다.
나는 대학을 오고부터 이전보다 많은 시간을 스마트폰을 벗 삼아 보내고 있다. 들어올 때만 해도, 앞으로 6년의 생활을 어찌 보내야 행복할지에 대해 생각했었다. 친구도 많이 만들고, 여행도 가고, 그런 것들 말이다. 하지만, 모든 것은 생각만큼 잘 흘러가지 않았다. 원래도 협소했던 인간관계는 먼 타지에 오니 한 줌만 남았다. 새로운 관계를 쌓으려 해도 고등학교 때와는 달리 여러 지역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보니 그들 사이에 섞이는 것이 힘들었다. 그런 이유로 혼자 기숙사 방에 누워서 유튜브를 보았다. 어찌 되어도 좋을, 쓸데없는 영상을 보면서 그렇게 있었다. 시간이 너무나 쉽게 죽어갔다.
공부를 할 수도 있었겠지만, 고3 시절의 압박감에서 벗어나다 못해 해이해진 뇌는 낯선 지식을 반기지 않았다. 그렇게 계속 시간을 죽이고 있으려니, 내 스무살이 어떻게 돼 버릴 것만 같아 도서관으로 향했다. 교양을 쌓을 겸, 소설책 몇 권을 빌렸다. 한 권을 다 읽는데 3주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린 이유는 명백했다. 유튜브 때문이었다.
책에 집중하여, 소설 속의 세계에 닿는 것으로 느끼는 희열감보다도 유튜브의 중독성과 자극성이 앞선 것이다. 책속에서 주인공인 한스가 친구 하일너와 무사히 학교를 졸업할 수 있을까에 대한 것보다 유튜브 영상 속의 아무개가 ‘오늘 웃긴 일이 있었음ㅋㅋ’ 이라 말하는 쪽에 흥미가 갔다는 말이다. 참으로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 헤르만 헤세가 겨우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아무개에게 패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결국 한스는 결국 졸업도 못 하고 실족사 해 버렸다는 점에서.
책을 읽고 나서도 나의 생활에는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그나마 남아있던 공부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렸다. 방학이 지나고 2학기가 되어서도 그랬다. 한동안 하루 4시간 정도는 유튜브를 보고 지냈다. 영상에서 늘어놓는 쓸데없는 정보들을 들으며 한껏 늘어져서 말이다. 물론, 그것이 영상을 보며, 늘어지는 것 자체 나쁜 것만은 아닐 테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독은 그 투여량에 의해서 결정된다. 유튜브 또한 그런 것이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약의 적량을 지키도록 권장하는 것이 약사라 한다면, 유튜브의 정량을 지키도록 하는 것은 철저하게 개인이라는 점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나는 내 역할에 실패해 버린 것이다. 이러한 실패에 대한 변명으로 내놓는 것이 그저 생각대로 안 풀리는 인생이라는 말로 정리하는 것은 한심한 일이다.
글을 적으면서 내 행위에 대해 돌아보며, 결국에는 그런 결론에 도달했다. 하지만, 그런 결론에 도달하였다는 것이 그대로 남겠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나 자신을 한심한 채로 남기고 싶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규칙을 하나 만들어 일주일간 지켜볼 생각이다. 유튜브를 보기 전, 보고 싶은 영상 한 가지를 정하고 다본 후에는 앱을 종료시키기로 말이다. 이는 알고리즘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아야한다는 뜻이다. 다 지켰을 때의 보상도 생각해두었다. (겨울용 원피스 한 벌을 살 생각이다.) 오늘 하루, 나는 다큐멘터리 한 편을 다 보고서 바로 앱을 껐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나는 어쩌면 이것이 ‘독의 종결’의 시작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만일, 이를 읽고 있는 당신 역시 유튜브에 저당 잡힌 삶을 살고 있다면, 자기 자신을 위해 탈출 시도를 해보는 것은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