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천근처럼 무겁고, 시간이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때가 있다. 밤늦게까지 공부하다가 집에 들어갔을 때라든가, 멀미나는 고속버스에서 다섯 시간을 버텨야 하는 때라든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존재하고만 있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힘든 시간을 보낸 것의 보상 심리로 뭔가 재밌는 기분을 느끼고 싶을 때. 손가락은 습관적으로 휴대폰의 세모난 애플리케이션을 누른다. 유튜브를 켜자마자 보이는 건, 갖가지 구슬이 든 유리병을 계단에굴려 깨뜨리는 영상. 쨍강 깨지는 게 명랑하기도 하다. 그 다음 영상에선 웬 서양 아저씨가 자신이 키우는 곰과 장난을 치고 있다. 뭐 그렇게 기억에 남을 만큼 재미 있는 영상은 단 하나도 없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유튜브 숏츠를 넘기다 보면, 어느새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아니면 그런 때도 있다. 힘든 일을 겪고 심란하기 그지없을 때. 불안하고 초조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삶의 근본이 흔들릴 때. 이럴 땐 얼른 현실에서 로그아웃 해야 한다. 그렇다고 웹툰이나 드라마 같은 가상세계에 빠져들 만큼 정서 상태가 안정되지도 못하다. 어찌 됐든 다시금 상쾌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진짜 죽어서는 안 되니까, 찰나의 죽음인 잠을 청해보지만 잠도 잘 오지 않는다. 그럴 땐 멍한 눈으로 유튜브를 켜서 다른 사람들이 뭘 샀는지, 뭘 먹었는지, 어딜 놀러갔는지 따위를 본다. 2배속으로 아주 빠르고 정신없이 여러 영상들을 마구잡이로 본다. 무겁고 고통스러운 내 삶을 잠시 망각하려고.
배고픔과 졸음마저 무시하면서 그러고 있다 보면, 내가 살아있는 인간이라기보다는, 관념적인 눈과 귀를 가진 의식 덩어리로 부유한다는 아주 기이한 기분이 든다. 화면 속 저들은 요리를 하고, 여행을 가며, 쇼핑을 한다. 나는 그냥 대충 누워서 화면을 쳐다본다. 그런데 마치 내가 저들처럼 삶을 열심히 산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나는 사라지고, 저들이 내가 되어 하루를 대신 살아준다.
그러다가 문득 현실을 자각하는 반성의 시간이 찾아온다. 솔직히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역설적이게도, ‘당신에게 남은 시간은 별로 없다’던가, ‘임종의 순간 사람들이 후회하는 것’처럼 위협적인 유튜브 썸네일을 마주칠 때, 비로소 내 인생의 방향과 버려지는 시간에 대한 고뇌를 시작하게 된다.
어릴 때 상상했던 어른이 된 나는 이렇지 않았는데! 글도 쓰고, 언어도 배우고, 책도 읽고, 사람들도 사귀고, 창조적이고 생산적이며 의미 있는 시간들로 삶을 채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은 정말이지 쏜살같고, 심지어 나이를 먹을수록 더 빨라질 테고, 언젠간 나도 죽을 텐데, 죽는 순간엔 숏츠나 넘기며 흘려보냈던 시간들이 아쉬워질 게 분명한데. 그렇게 당장 유튜브를 집어치우고 ‘갓생’을 살고 싶은 자기계발적 욕구에 빠져들다가……
금세 체력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지쳐서 유튜브에 의존하게 된다. 어느새 내 눈 앞에 펼쳐지는, 자이언트 얌으로 가방을 뚝딱 만들어내는 신기한 영상.
스탠포드 대학의 교수 에나 램키는 저서 『도파미네이션』에서 쾌락과 고통을 저울에 빗대어 설명한다. 인간은 쾌락을 느끼면 도파민이 분비된다. 문제는 기다리거나 노력하는 과정 없이 도파민이 분비되면, 쾌락의 보상 회로가 망가져버린다는 거다. 쾌락과 고통 간 균형이 깨지면 고통에 더 민감해지고, 더 반복적이고 강한 도파민을 좇게 된다.
유튜브만큼 게으르게 도파민을 얻어내는 지름길이 없다. 내 관심사를 읽은 유튜브 알고리즘은 터치 한번으로 온갖 자극적인 영상들을 발굴해 내며 뇌를 어지럽힌다. 오염된 뇌로는 단순한 일상에서 쾌락을 느끼지 못한다. 슬픈 자기고백을 해보겠다. 난 노을에 물들여지는 하늘을 봐도, 오랫동안 눈에 담아낼 감수성이 메말랐다. 잘 쓰인 소설을 공들여 읽기가 쉽지 않아졌다. 삶에 몰입하지 못하고, 뭐든 풍부하게 느끼지 못하고, 그냥 얄팍한 인간이 되어버린 거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도, 꽤 고통스럽다. 창작의 고통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대충 유튜브 숏츠를 휘휘 넘기고 싶어진다.
성의 없는 가짜 도파민에 절여진 나라는 인간은 어디까지 무료해지려나?
삶을 향유하는 법을 되찾기 위해 유튜브를 지배하기로 마음먹어 본다. 아예 유튜브를 삭제하겠다는 건 아니다. 매순간 진지하고 충실하게 살려고 덤비다가는 언젠간 더 큰 중독에 빠져들거나, 아님 정신병원에 실려가고 말 거다. 때로는 단단히 묶인 자아를 느슨하게, 아무 생각 없이 흘려보내는 시간도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유튜브는 비유하자면 마약이다. 마약도 잘만 쓰면 약이 된다. 나는 도파민 중독의 주적인 유튜브 숏츠 쳐다보기를 관두고, 유튜브에선 예능이나 시사 다큐멘터리, 영화 리뷰, 좋아하는 유튜버의 창작물처럼 맥락이 있는 영상만을 천천히 보기로 다짐한다. 뭘 보고 들으면서 쉬더라도, 미지근한 도파민이 나를 집어먹지 않게, 오래 곱씹을 수 있는 영상을 편식하기로 한 거다. 그저 무거운 일상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도구로써 유튜브를 철저히 이용해 볼 생각이다. 마음처럼 쉽게 될 거라고 믿진 않는다. 하지만 이런 자각과 결심이 내 하루를, 내 인생을 더 낫게 만들 거란 믿음은 있다.
인생을 산다는 게, 그 짧고도 긴 시간을 잘 채운다는 게 참 쉬운 문제가 아니다. 복잡한 현대 사회에선 더 그렇다. 그러나 용기를 내보기로 한다. 몸이 천근처럼 무겁고, 시간이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힘든 때에도, 나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가짜의 도움 없이 스스로 삶의 무게를 경쾌하게 짊어지게 될 수 있도록 말이다.